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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인 존 로크에 대해 알아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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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치사상가이면서 철학자인 존 로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영국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그는 계몽철학 및 경험론 철학의 시조라고 불립니다. 그는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고 반스콜라 스타일로 '인간 오성론' 등 저명한 저서를 남겼습니다.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본성에 맞게 소질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632년 영국 서머싯의 린튼에서 태어났습니다. 살림꾼이자 법률가인 아버지는 내란 당시 의회군과 왕당군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자연과학·의학 등을 공부해 한때 공사 비서가 됐고, 독일에 머물면서 애슐리 경(뒤편 샤프츠베리 백작)을 만나 그의 시·의사와 아들의 교사, 고문이 됐습니다. 백작은 실각한 뒤 반역죄로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해 1689년 사면됐습니다. 망명 기간 동안 여러 학자들과 교분을 맺어 온 그는 귀국 후 '종교적 관용을 위한 편지'(1689년), '제2서한'(1690년), '제3서신'(1692년), '통치가론'(1690년), '사람 간의 성별론'(1690년) 등을 펴내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쳤다. 이후에도 관직을 지내다 1700년 만에 은퇴해 엑식스의 오츠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당시 데카르트 철학과 아이작 뉴턴이 완성한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반스코라성을 지녀 계몽철학과 경험론 철학의 시조로 불렸습니다. '인류 5성론'은 그의 영향을 바탕으로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쉼이 계승한 경험론과 내재적 현상론적 입장에서 이매뉴얼이 비로소 성과를 얻었다는 인식을 근원적 과제로 제시하고 논한 책입니다. 제1권에서는 먼저 데카르트나 케임브리지 플라톤파의 본래 관념과 원리를 부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2권에서는 인지가 감각과 반성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단순 관념이며, 이를 복합 관념으로 해석합니다. 예컨대 전통적인 '실체' 개념도 단순 관념의 복합으로 그 배후에 기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색, 향, 음 등의 감각과 상대적인 제2의 성질, 연장, 운동, 고체성 등의 물질 자체가 갖는 제1의 성질을 구별하여 전자는 후자가 감각기관을 자극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당시 과학실재론의 전제로 삼았습니다. 또, 알 수 없는 물질의 실체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신에 대해서도 반성의 관념과 기능인격에 따라 설명했지만, 정신적 실체와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다음 버클리, 쉼에게 넘어갔습니다. 3권의 언어론에는 스콜라의 실체형태에 대한 비판, 개념론이나 유명론의 보편적인 개념설명, 정의의 견해 등 현대적 의미론에 대한 중요한 고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4권은 논술부터 3권까지를 바탕으로 지식의 확실성, 가능성, 종류를 다뤘습니다. 제4권에서는 자아의 직각지식을 지식의 근원으로 하는 이성론의 영향을 받지만 지식을 관념과 대상이 아닌 관념 사이의 일치나 불일치 지각으로 보는 관념 간의 관계는 그 후의 경험론의 방향을 나타냅니다. 인간 오성론에 단편적으로 보도된 것 외에 따로 정리된 윤리서는 없습니다. 그러나 도덕적 심리 해석 방법, 쾌락주의, 행복주의의 성향, 신의 법, 자연법, 국법의 일치로부터 도덕을 구하려는 방향 등은 영국 고유의 윤리와 공통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또 계시의 뜻은 인정하지만 이성적 논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우연이라는 생각에 종교적 이신론을 부추기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법률, 정치사상에서는 계약론을 채택하고 있지만 홉스의 전제주의가 자연상태보다 더 열악하다고 보고, 주권재민과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대표제에 따른 민주주의, 입법권과 집행권의 분립, 이성적 법통치와 개인의 자유로운 인권의 양립 등을 강조하며, 종교적 관용을 강조했습니다. 명예혁명을 대표하는 그의 정치사상은 프랑스혁명과 미주독립 등에 큰 영향을 미쳤고 서구 민주주의의 근본사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인의 미주 정복 정당화를 위해 유럽 문명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원시사회를 비교하는 서구중심주의 경향이 강합니다. 또 교육에 대한 관심도 큽니다. 그는 당시 교육법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그리스어, 라틴어 집중주의, 암기식 주입주의를 배격하고 수학 추리와 체육, 덕육, 지육을 강조하며 사람의 자질이 본성에 따라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가정교사에 의한 교육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신체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단련주의 교육을 중요시하며, 지식은 체육과 덕육을 향상시키는 부차적인 수단입니다. '금리저하와 화폐가치가 같아진 결과에 대한 고찰'(1691) '교육론'(1693) 등의 저서도 있습니다.